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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멕시코에서 교황님을 뵈러 간 여정 (어재우 아브라함 수사)
  글쓴이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날짜 : 12-04-19 16:54     조회 : 9,163
 


멕시코에서 교황님을 뵈러 간 여정

“ ‘저는 아이 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예레미아서 1:7)  17살 때 한국을 떠나고 미국에서 3년, 아일랜드에서 1년 그리고 지금 멕시코에서 지내면서 하느님이 예레미아에게 하신 말씀을 많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한국을 떠나고 미국(New Hampshire) 소신학교(Immeculate Conception Apostolic School) 로 입학했을 때는 신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길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는 저를 많은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고, 매번 힘들 때마다 항상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저희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는 신부양성교육 과정을 길게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으로써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또 2년을 지냈습니다. 그 후 수련기 과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과정 동안에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기도와 침묵에 할애하면서 성소에 대해 깊은 묵상을 하고 하느님과 더 가까워 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1년은 미국 코넷티컷 (Connecticut)에서 2년째는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도중에 이곳 저곳 이동도 많이 하고 여러 각지에서 온 수사들과 같이 지냄에 따라 다양한 문화를 접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수련기 과정 후에 수사가 되었고, 지금은 멕시코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신부가 되려면 철학공부와 신학공부 과정을 더 거쳐야 하며, 또 실습기간도 2년정도 더 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10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이곳 멕시코는 세계에서 천주교인 수가 2번째로 많은 가톨릭 국가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길거리 이름조차 대부분 성 베드로 거리, 마리아 과달루페 거리라든지 문화 자체에 천주교가 많이 배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의 문화는 제가 지금까지 접했던 문화와는 아주 다른 색다른 문화였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쾌활하고, 밝은 사람들 입니다. 예전에 한번 여기에서 아주 흔한 “미션”이라는 것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때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문을 두드리고 여러 가지 사람들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 저는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가진 것이 없던 사람들도 우리를 맞이하며 크게 배려하는 것을 보고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아주 따뜻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 입니다.  여기 멕시코는 5년전쯤부터 범죄단체(마피아 문제)로부터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죽고 전 민족이 이문제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지내는 몬테레이 (Monterrey)에는 이런 범죄자들의 악명이 아주 높습니다. 교황님은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시련을 보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희망을 주려고 3월 24일부터 3월 26일 까지 방문하셨습니다. 저로써는 아직 로마에 가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회가 처음으로 교황님을 처음 뵙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교황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만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티켓도 미리미리 알아보아 두고 방문계획도 모두 세우고 말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레온(León)주에 있는 과나화또(Guanajuato)라는 도시의 멕시코의 순교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공원에서 주일 미사를 가지기로 일정이 잡혀있었습니다.

우리는 24일 토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바로 레온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여기 멕시코는 나라가 워낙 크기 때문에 나라의 절반을 횡단한다는 것도 10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레온 근처까지 버스를 타고 밤 7시가 돼서야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계획은 밤12시까지 조금 휴식을 취한다음 출발하는 거였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저녁을 먹은 다음 9시에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출발한 곳에서 공원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으나 워낙 교통이 막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밤새도록 줄을 서고 마침내 미사 보는 곳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레온은 사막지방입니다. 도로에서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선인장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막에서는 낮에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지만 밤에는 또 급격히 하강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덥다는 소리만 듣고 그냥 반팔만 입고 나갔는데, 정말 밤새도록 얼마나 춥던지 우리는 서로 펭귄처럼 다같이 꼭 붙어서 움직였습니다. 우리 수사 중 한 명은 양털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따뜻해서 많은 수사들이 그 수사 옆에만 붙어있으려고 난리였습니다.  또 밤새도록 노래도 같이 부르고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과도 많이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봐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한국말을 해 보라고 하고 멕시코는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저보고 한국노래도 하라고 해서 저는 한국의 애국가를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가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하며 응원했던 것 같이 여기에서도 많은 응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주님이 최고다! (¡El mero mero es el señor!)”이라는 응원 이었습니다. 미사 보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도 미사시간인 오전 10시까지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되는 다시 해는 쨍쨍 내려 쬐면서 온도는 급격히 올라가 반갑기도 했지만 금새 너무 더워져서 다시 시원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10시 정각에 헬리콥터를 타고 등장하셨습니다. 밤새도록 기다린 탓이라 모든 사람들이 전부 흥분했습니다. 도착 후 교황님은 자동차에 올라타 우리 근처를 다 돌았습니다. 미사의 강론말씀은 정말 뜻 깊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이 전하려는 희망의 인사말을 들으려 왔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힘들더라고 하느님께 항상 의지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내면에 힘을 주시고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또 힘들 때일 수록 더 힘을 내라고도 하셨습니다. 또한 신자가 되는 데에서 오는 기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자인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힘을 줄 것이며,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힘들 때 일수록 더욱 힘들을 내라고도 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미사가 끝나고 미사 후 교황님은 다시 헬기를 타고 다음 모임을 향해 떠나셨습니다.

약 350만명의 관중들이 미사를 본 후라 장소를 떠나는 길이 너무 많이 막혔습니다. 저는 이때 빅토르 휴고가 쓴 레미제라블이 란 책을 읽고 있었는데, 버스로 돌아와서 기다리는 3시간동안 아주 열심히 읽어 다 끝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창 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공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날은 정말 버스 안에서 생활을 다 한 듯 합니다. 교황님과 미사 한번을 보려고 이틀 밤을 새어가며 고생한 사실이, 우리뿐만이 아니라 350만명이나 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우리처럼 교황님 뵙고 미사 드리기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자가 된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 예수님을 알고 또 그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과 신뢰, 정말 우리는 아주 기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다시 수도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그 동안 밀린 잠을 보충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교황님을 뵈러 간 그때의 열기와 환호 또 기쁨은 정말 인상적이었고 절대로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어재우 아브라함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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