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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기나긴 전투 끝에
  글쓴이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날짜 : 11-06-09 11:07     조회 : 2,320
 

After a long battle
기나긴 전투 끝에

피에르 카우에트(Fr. Pierre Caouette) 신부, LC (캐나다)

나는 주일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시는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 냉담 중인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다.  캐나다 퀘벡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나도 어려서부터 하키를 시작했고, 언젠가 내셔날 리그의 하키선수가 되는 꿈을 꾸며 자랐다. 그리고 내 밑으로는 스포츠와 파티를 좋아하는 두 여동생이 있었다.

내가 12살이 되던 때에 첫 번째 부르심을 느꼈다. 두 명의 교구 신학생이 종교 시간에 와서 그들이 사제성소를 느끼게 된 이야기와 함께 성소를 따르기 위한 모든 것을 알려 주고 갔다. 내 친구는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지만, 나는”빨리 이야기 끝내고 나를 혼자 내버려 두었으면..”하고 되뇌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부와 하키에 대한 나의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2년 후,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신학생이 아닌 두 명의 수녀님이었다. 그들이 부르심을 느끼고 응답한 과정과 그렇게 한 것이 얼마나 기쁜지를 이야기할 때, 나는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 나를 사제의 길로 부르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시계를 보며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랬다. 내가 원하는 삶은 많은 돈을 벌고, 즐기고, 결혼하는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뒤, 내가 방에 혼자 있을 때였다. 나는 하느님께 “주님, 제발 제가 사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해 주세요.”하고 간구했다. 이렇게 청하고 나서 학교에서 받았던 신약성경을 펼쳤는데, 그때 마침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언젠가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구절이 적혀 있는 페이지가 펼쳐진 것이다. 나는 그 즉시 성경을 책상에 올려 놓은 채 절망적으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 부르심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내게 시간을 주셨고 그 후 거의 2년간은 그런 생각이 다시 들지 않았다.


회심

냉담한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특별히 세례식이나 장례식이 없는 한 1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만 미사에 참여하였고, 그런 생활은 적어도 1996년 여름까지 계속 되었다.

1996년이 끝나가던 어느 저녁, 내가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집에 들어오셨다. 친구들이 가고 난 후, 나는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여쭤보았고,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참석했던 학회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몬트리올에 있는 성 요셉 오라토리오회의 창립자이신 성 안드레 수사님의 사명을 부여 받은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셨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여성과 그녀의 사명을 통하여 기적을 포함한 많은 축복을 베풀어 주셨다. 그 당시에 나는 기적을 목격하기 전에는 하느님을 믿거나, 적어도 내 삶의 중요한 자리를 하느님께 내주지 않겠다는 나만의 “철학”을 가졌었기 때문에, 이 인물에 대해 많은 흥미를 느꼈다. 다음날 나는 이 학회에 참석하였고, 그 곳에서 나의 회심이 시작되었다. 1996년 여름 동안에 나의 미사참례는 1년에 2번에서 매주 일요일로 바뀌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나의 부모님과 여동생들도 각자의 때와 방법을 통하여 비슷한 영적 성장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리고 승자는…

나의 회심 이후에, 즉, 내가 신앙생활을 좀더 깊이 있게 시작한 이후 사제 직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비록 전보다 하느님께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제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꿈이 물론 더 그리스도교적이 되긴 했지만, 사제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 버거운 일이었다.

1997년 4월 사제로의 새로운 부르심에 저항한지 7개월 내지 8개월이 되었던 어느 날, 나는 혼자 내 방안에서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에 열중하던 중에 “만약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고 전능하시다면, 그리고 내가 사제가 되길 원하신다면, 그건 아마도 그 길이 나에게 최선이기 때문일 거야. 그런 경우라면 받아들이겠어.”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성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즉시 성모상을 방에 계시던 아버지께 가져가서 보여드렸다.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보고 만져보신 뒤 나에게 특별한 은총이 주어졌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날 나는 사제의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초대를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몇 차례의 여름기간 동안, 나는 잔디 깎는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이 사업이 학생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만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97년 여름, 내 고객들 중 한 명이 나와 동갑인 그의 막내딸을 소개해 주고 싶어 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마음은 사제가 되고 싶은 열정으로 더욱 세차게 불타올랐다.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같은 해 12월, 나는 정기적으로 참여하던 청년 활동에 가게 됐는데, 성체 조배 중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로 사제가 되고 싶지만, 하느님께서 마음을 바꾸셔서 더 이상 원하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 년 동안 부르심에 저항하다 결국 받아들였는데, 하느님께서 더 이상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가능할까? 내적인 혼란 속에서 하느님께 말씀 드렸다. ”만약 여전히 제가 사제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표징을 주십시오.” 몇 분 후에, 활동을 지도하는 한 자매가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계획이 적혀있는 작은 종이를 바구니 안에서 차례대로 뽑을 거예요; 그리고 난 후 성탄절 기간 동안 그 지향으로 기도를 계속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현시된 성체의 발치 아래에 가서, 작은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종이를 하나씩 꺼내 펼친 후 적혀져 있는 내용을 크게 소리 내어 읽었다. 나도 내 것을 꺼내어 펼친 후 큰 소리로 읽었다: “성직자!”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내가 사제가 되길 바라셨던 것이다.


깨달음!

1998년 6월 22일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를 만났다. 나의 회심과정을 도왔던 좋은 친구 한 명이, 나에게 수도회 신부님들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심어 주었고 나를 그 분들께 소개시켜주었다. 그분들로부터 청년과 가정 사목 같은 다양한 사목 활동을 비롯하여 수도회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더 이상 다른 것을 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하느님께서 내가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의 사제가 되길 원하신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긴 밤을 보내고 일어나서 - 여름 사업을 제쳐두고 성소 분별 프로그램에 참여할 방법을 궁리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 나는 부모님께 나에게 사제성소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의 신학교에서 그 해 여름을 보내야겠다고 말씀 드렸다. 이전에 한번도 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큰 사건이었다. 신앙의 선물을 받고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신 부모님께서는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지해 주셨다.

3일 뒤, 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 고모 한 분께 기도를 청하고자 전화 드렸다. 여름 동안 성소 분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씀 드리자, 고모께서는 즉각적으로 ”아, 이제야 알겠구나.”하고 말씀하셨다.”  “뭘 아셨는데요?”하고 내가 여쭈어 보았다.
 “지난 22일 밤부터, 낮이고 밤이고 각기 다른 시간에 네가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직감이 들었단다; 그래서 미사에 참례하여 널 위한 기도를 드렸지; 묵주기도도 너를 위해 봉헌했어; 밤에 잠이 깨서도 너를 위해 묵주기도를 드렸단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확실히 이 기도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일주일 뒤인 7월 1일, 드디어 나의 가족들은 하느님께서 아직도 내가 사제가 되길 바라시는지 분별하기 위해 나를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신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yes”였다.


피에르 카우에트 신부는 1979년 10월 4일 캐나다 퀘벡주의 시쿠티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퀘벡의 샹플랭 세인트 로렌스 학교에서 순수 과학과 응용 과학을 공부했다. 1998년 12월 캐나다 온타리오 콘월의 수련원에 입학하였으며, 그 후 뉴욕의 쏜우드에서 철학1년차 과정을 마친 후 콘월의 수련원에서 3년간 양성인 팀의 일원으로 있었다. 철학 2년차 과정을 뉴욕에서 마치고 로마의 교황립 사도들의 모후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현재 같은 대학 신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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