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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글쓴이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날짜 : 13-04-25 16:11     조회 : 2,085
 


Called for These Times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오웬 컨스(Owen Kearns, LC) 신부

She loves you, yeah, yeah, yeah!” 60년대 초 작은 마을 가톨릭 아일랜드는 온통 흥분한 십대들로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밥 딜런이 우리의 의식 속에 밀고 들어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음과 정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갈등이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부모님께서 하시던 대로 사제들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들에게 뭔가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사제들은 우리의 문화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우리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어쩌면 그 때 냉담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다니던 중학교의 Irish Christian Brothers의 수사 한 분이 우리를 초대했습니다. 우리에게 수업을 마친 후에 수사들이 사용하는 작은 조배실에 가서 주님을 만나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첫 날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조배실을 찾았지만, 몇 일이 지나자 남아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뭔지는 몰랐지만, 그 어떤 것이 저를 자꾸 그 곳으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은 조배실의 감실 안에서, 침묵하고 계신 주님과 저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것을 의식하지도 못했습니다. 저의 내면과 대화 없이 감실을 나왔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대화는 그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고민들, 즉 미래란 무엇인가, 미래의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들이었으며, 어떤 태도, 신념, 가치들이 내 안에서 피어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안의 그러한 생각들이, 침묵 가운데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 느낌들, 생각들이 제 안에서 점점 커지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마치 저를 사제로 부르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차, 큰 일 났구나."
그 때부터 제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 설득하기 위한 긴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한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사제가 될만한 그릇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계속 이어가면, 제 생각이 옳았고, 그러다 보면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은 결국 사라져 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이것’이 좋아요. 그러니 사제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나의 관심사들을 주님 앞에 열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봐, 너는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그렇지 않니?”

1965년 크리스마스 이브, 제가 열 일곱 살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핀탄 페럴리(Fintan Farrelly)와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이때에도 내면의 대화, 아니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피정도 성당 안도 아닌 곳에서 말입니다.

"오웬, 이리 오너라. 사제가 되어라."
"싫어요."
"왜 싫으니?"
"내버려 두세요. 좀 가 주세요."
"어서 오너라. 두려운 게로구나."
"그래요. 두려워요. 그러니 좀 내버려 둬 주세요."

물론, 이 말씀은 사제가 되는 걸 그저 한 번 생각해 보라거나, 한 번 시도해 보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훨씬 더 극적인 부르심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 버리고, 모든 사람을 다 버리고, 주님만을 위해 살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고 하신 후에, 별 대단치 않은 걸 내미는 분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추구하던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주님께서 배신하시거나, 갈취하거나, 실망시키거나, 낙심케 하진 않으실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모든 걸 내려 놓는다면, 그러길 참 잘했다고 생각할 날이 올 것이란 걸 알았죠.
그래서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좋아요. 한 번 해 볼게요.’

그 순간, 제 어깨를 내리 누르던 무거운 짐이 벗어진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핀탄이 눈치 챌 정도로 행복해졌습니다.

“오웬, 무슨 일 있어?”
“응, 핀탄. 나 방금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어.”
“오, 저런.... 어쩌냐...”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어쩌긴. 멋진 일일 거야. 얼마나 멋진진 알 수 없지만, 아마 대단할 거야.’ 그렇다고 핀탄과 말다툼을 하거나, 설득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도 이해를 못했는데 어떻게 그 친구가 이해를 하겠습니다. 물론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보고 그 사제들처럼 되고 싶느냐고 묻는 것이겠지요. 물론, 핀탄은 틀렸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아일랜드에서 가능한 대안이 있다면, 바로 선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제가 되어서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었었습니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어떻게 제 삶 속에 들어왔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려면 중학교 시절에 선교 사제들이 들려주었던 선교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저의 학교의 종교 수업 시간에는 외부 강사를 자주 초대하곤 하였는데, 선생님들도 우리도, 선교사님들도 모두 좋아하였습니다.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학교를 방문한 선교회 사제들은 선교에 관심이 있는지 설문지를 하나씩 나눠주곤 했습니다.

그 중에 남미에서 사역했던 미국인 선교사가 있었는데 저는 그 선교사의 따뜻한 남쪽 나라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인품도 좋았을 뿐 더러, 선교 중에 있었던 흥미 진진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태도는 한 마디로 ‘자신 만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했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도 매우 충만한 삶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흠.. 사제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는데?”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에 속한 수사 두 분이 더 있었습니다. 우리가 2학년 때 강의를 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사제가 있었고, 3학년에 올라간 직후에 방문했던 멕시코 출신 사제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사제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사제는 매우 지적이고, 뭔가 격식이 있는 것 같았고, 멕시코 사제는 활기차고 생기 발랄해 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열정적이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뭔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어떤 존재에게 붙들린 것처럼, 아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제가 되어야만 한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군.” 그리고, 사제들의 두 공동체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제가 미국 선교회의 지시를 받는다면, 제가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자신만만한 성품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에 소속된다면, 수도회 사제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즉 위대한 의무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에 편지를 보내 더 자세한 사항을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답장은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정말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저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 사이, 저는 저의 소명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고, 그 다음은 버텼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저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또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굴복하여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던 때에, 저희 학교를 찾아왔던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의 사제들이 간단히 편지를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내 왔습니다.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가족들은 어떤지, 크리스마스 시험은 어땠는지 하는 사소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8 페이지 분량의 컬러 브로셔를 보내왔습니다. 대부분 남 아메리카에서의 선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로셔의 마지막 페이지는 고층 빌딩이 늘어선 뉴욕시의 야경이었습니다. 해지는 저녁의 도시에 쭉쭉 올라선 고층 빌딩들이 멋있었습니다. 거대한 도시였죠. 동쪽 강 건너편에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제의 실루엣이 있었습니다. 반대편 페이지가 아니라 바로 그 페이지에, 뉴욕 시의 고층 건물에 기 죽지도 않고, 무기력하지도 않고, 흡수당하지도 않은 사제가 서 있었습니다. 외면하지도, 압도당하지도, 또한 겁먹지도 않았습니다. 무관심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뉴욕의 야경을 마주보고 당당히 서있었습니다. 마치 “뉴욕아 내가 간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밑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현대사회의 모든 영역에 들어갈 결심을 한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그 때 알았습니다. 이 사제들은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접근방법이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다양한 종교 공동체에서 발행한 문건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모두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하게 바꾼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는 주제 자체가 달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세속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 사회를 변화시키기로 결심을 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저희 교실에 와서 강의한 두 사람은, 그들을 완전히 변화시킨 그 사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과 열정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비전이 그야 말로 내 영혼의 깊은 곳에 내려앉았습니다. 아무 저항 없이, 주저함도 없이, 내 영혼이 그 비전을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될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웬 신부는
1983년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북미에서 성소양성과 인문학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미국의 주요 가톨릭 신문인 The Catholic Register에서 편집장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현재 인문학 교수로 재임 중이며,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대한 연구도 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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