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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고승범 사도요한 신부
  글쓴이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날짜 : 11-03-03 11:05     조회 : 3,902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성소 이야기

 

많은 사람들은 사제의 소명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성직자로서 제단에 서기까지 어떤 길을 밟아왔으며 그 길로 인도한 결정적 순간과 그들의 노력이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제 삶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거나 하느님의 분명한 부르심을 받고도 이를 회피하고 방황했다는 극적인 일화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저를 위해 따로 기적이나 표징을 보여주시지는 않았지만, 제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저의 곁에 계시면서 어쩌면 남들보다 빨리 찾아왔을지 모르는 고난 속에서 그분을 구하는 저를 따뜻이 감싸주셨습니다. 언제나 그러하셨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하느님은 온화한 위로와 사랑의 말씀을 통하여 평범한 일상 생활 안에서 함께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소원


저는 1978년 2월 9일 한국의 서울에서 평범한 중산층 가톨릭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해 오셨습니다. 대학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회사가 전액 장학금을 제공할 정도로 그 능력을 일찍이 인정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시절에는 드문 영국 유학까지도 다녀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소박하시지만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가족에 헌신하시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 중에 하나로 제가 생전 처음으로 욕을 했을 때, 부모님이 다투셨습니다. 그 때 딱 한번 처음으로 두 분이 다투셨을 정도로 두 분의 금슬은 너무 좋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십대 시절에 한국 최초의 수도회인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다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수녀들의 삶을 동경하시어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위해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만성 천식 때문에 수녀회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병은 어머니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되었지만 하느님께서 어머니에게 당신의 계획을 보여주신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어머니는 가족 중에 사제가 나올 수 있게 해 주십사 하느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두 분은 결혼 후 잠시의 냉담시기가 있으셨지만 다시 믿음을 실천해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피정 기념으로 그리고 가족 모두가 그리스도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고자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문구가 쓰인 명판을 집에 두시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세 살 때 아버지를 갑자기 여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제가 쇼핑 간 동안 집안에 혼자 계시던 아버지는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셨고,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고 바닥에 엎드려 쓰러져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되신 것입니다.


사제로서의 소명을 가지게 된 계기가 유년 시절의 이와 같은 특정 사건과 관계 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저는 택시 운전사나 과학자처럼 여러 직업들 가운데 하나로 항상 사제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여러 교구 사제로부터 항상 좋은 인상을 받았고 가족과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사제 한 분이 계시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사제가 되길 바라셨지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에도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계획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제가 자연 속에서 자라길 바라셨고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는 어머니와 저만 남은 저희 가족은 시골로 이사했습니다. 10-15 가구 규모의 작은 가톨릭 공동체가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는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기도 모임을 가지기도 했지만 주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꽤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계신 외할머니로부터 이민 초청장을 받은 것은 제가 5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은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치료 방법을 구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우리는 미국에서의 치료라는 희망을 가지고 미국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오래 걸리는 이민 절차가 빨리 진행되어 우리 가족은 제가 6학년 중간 학기쯤인 1989년 8월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어린 제가 받은 첫 인상은 사람, 건물, 차, 심지어 음식까지 모든 것이 정말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가까운 곳에서 외 삼촌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배워야 할 것이 많았고 아주 바쁘게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셨고 어느 피정에서 레지오 수도회를 알고 있는 신자를 만나게 되셨습니다. 바로 이 분의 소개를 통해서 1990년 크리스마스 직후에 캘리포니아 주에서 대륙 반대쪽에 있는 뉴햄프셔 주에 있는 레지오 수도회 소신학교에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성전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어린 사무엘처럼 저도 그 첫 방문의 특별한 경험을 기억합니다. 어느 날, 눈 내리는 야외에서 놀다 들어와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은 후, 학교 내의 작은 성당으로 갔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웠고 붉은 감실등 만이 예수님이 거기 계심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어느 특별한 것을 보거나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참 평온했습니다. 전에 전혀 겪어 보지 못한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여름에 저는 그 소신학교에 입학했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느꼈습니다. 매 순간 여러 가지 활동으로 바쁘고 재미있었고, 일상 학교생활 외에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키워 나가면서 어엿하게 성장해 나갔습니다.


소신학교에서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1995년 저는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에서 수련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련기간은 수도 생활을 위한 안목을 키우고 집중적으로 영적 훈련을 하는 수도 생활의 공식적 기간입니다. 기도하고 복음을 읽으면서 성체 조배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기뻤던2년간의 수련 기간을 마치고 1997년 8월 30일에 첫 서원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에 사는 친척들과 함께 오셨고 제 삶을 축복해주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 드리며 모두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첫 서원 한달 후 또 다른 시련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집 밖에서 갑작스럽게 급성 천식 발작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버리셨습니다. 저는 바로 캘리포니아로 갔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 곁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석했고 고인의 은덕을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어머니는 당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비록 한 칸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사셨지만, 재활용품 장사를 해서 얻은 수익으로 집 없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대접하셨으며, 그 분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도 도움의 손길을 아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영적 어머니셨던 한국에 계신 노(老)수녀님께 전화를 드려 어머니의 작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알아 왔던 그 분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아, 네 서원미사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내게 전화하셨던 것을 아느냐? 너무 행복해 했고 하느님께 감사했단다. 너무나 행복해서 하느님이 지금 데려가셔도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그랬는데 하느님이 엄마의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구나.” 저는 그 말씀이 제 어머니가 받으신 소임을 이제 완수하셔서 하느님께서 어머니를 당신 품에서 쉬라고 불러 가셨다는 말씀처럼 들려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기도와 희생, 모범으로 제 성소 여정을 같이 하셨고 이제 자신의 몫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여기 있나이다, 주님


부제품식 리허설 중 한 순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제단 돌 바닥에 엎드리기 위해 무릎을 꿇고 있는 중에 깊은 깨달음의 순간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바닥에 엎드리면서 저는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그 분의 뜻대로 그 분이 원하시는 때에 제 삶 안에서 하시도록 제 생애를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하느님을 위해 그 분과 함께 살기로 한 저의 각오를 다시 살피고 다질 수 있는 많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접했으며, 인턴 기간에는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생 양성을 도우며 4년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제 사제직의 문턱에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제가 사제직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선 제 어머니와 어머니의 병을 저에게 제 인생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32년간의 제 인생을 돌이켜 보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하느님께서 제게 보내주셨는지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제 부모님에 대해 어찌 충분히 감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부모님과 저를 위해 다른 계획을 세우셨기에 제 부모님은 부제 품식에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며 우리의 보잘것없는 삶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저의 감사 기도에 함께 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고승범 사도요한 신부님은 2010년 성탄절에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현재 한국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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