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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 사순절 총장 신부님 편지 (2011년)
  글쓴이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날짜 : 11-03-11 17:07     조회 : 2,949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렉늄 크리스티 사도직 운동

총장

2011년 3월 9일,

로마에서 사순절을 시작하는 즈음에 렉늄 크리스티 회원과 친구 여러분께

그리스도안에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나갔던 몇몇 해에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사순절을 시작하며 이 글을 씀으로써 여러분들 사이에 함께 있고자 합니다.

이 전례시기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역사적 시기는 우리를 회개를 향해 이끌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며, 더욱 그분처럼 되게하는, 이웃에게 더 내어주며 살도록하는 특별한 부르심의 시기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콜로 3,12) 옷을 입도록 초대합니다. 렉늄 크리스티 안에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사랑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자기자신을 내어주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최고선을 추구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올해 사순 제3주일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 장면이 (요한 4,5-42) 우리의 묵상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로서의 우리들의 삶은 예수님의 본보기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대할 때에 보여준 적극성은 그분의 섬세함과 사랑과 어울어저 우리 각자에겐 늘 영감의 원천이 되어줍니다. 렉늄 크리스티 운동은 회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됨으로써, 인생은 아름답고 인생의 완성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다른이들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같은 식으로, 이 복음장면에서의 예수님의 예를 따라, 다른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다음의 세가지 기본 자세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깨우기, 응답하기, 함께하기.

1. 깨우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서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그 여인 안에 있는 하느님께 향한 목마름을 깨우기까지 합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 (요한 4,10). 우리는 모두 우리 안의 가장 깊은 곳에 하느님을 향한 염원을 지니고 있고, 이는 우리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으며, 하느님 안에서 그분을 향해 살고자 하는 이 깊은 염원을 형제자매들과 나눠야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에 목말라 합니다. 선하고 자비로운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선을 원하시고, 그 선은 그분 자신입니다. 반대로, 사마리아 여인은 구하고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존재의 불만족을 상징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도 다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계속 물을 길으러 우물가에 나와야 함은 삶의 반복되고 무기력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날 예수님과의 대화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너무나 놀라워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요한 4,28-29) >>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2008년 2월 24일 삼종기도 담화).

우리는 교회와 함께 이 사명을, 특히 새로운 복음화의 사명을 함께 수행하도록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교황님께서 교황청에 새로운 부서를 만드셔서 그분을 보조하게 했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차기 주교 시노드의 주제 또한 이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그들안에 가지고있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목마름을 깨우는 일은 시급합니다!

2. 응답하기

이 여인은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고, 또 귀찮게 매일 우물가로 나가지 않아도 되게하는 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그 물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깨워냅니다. 어떻게요? 그 여인이 어떻게 살고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알려줌으로서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한 것은 맞는 말이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요한 4,17-18). 그 상황을 알려줌으로써 그 여인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에 들어가 지금의 방식으로는 결코 진정한 행복을 향한 염원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의 응답을 남깁니다: <<목마름을 해소해주며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살아있는 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 여인의 사생활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해 보입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진정하고 유일한 하느님을 숭배할 때가 왔음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매우 드문 일을 합니다-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힘니다>>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2008년 2월 24일 삼종기도 담화). 누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후 그대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의심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외친 베드로 성인이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 6,68). 그리고, 이렇게 쓴 바오로 성인이 체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20).

예수님의 제자, 사도로서의 우리 삶은 단순한 아이디어만을, 그저 교의적인 내용만을 전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이는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질문에 응답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우리 삶의 양식 자체가 그런 질문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체험이나 증언은 예수님 안에서 행복과 자아실현을 찾는 것은 가능하고 그분이야말로 결정적인 응답임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다른이들이 예수님의 사랑, 우리를 평화로 채워주는 그분의 겸손, 우리의 마음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그분의 사랑스러움과 온유함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향유이며 기쁨의 샘인 예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도록 다른이들을 도와주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삶을 일관성있고 진실하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하늘과 천국을 바라보고 도중에 길을 잃지 않게하는, 날개와도 같은 영혼의 진정한 자유를 주시고, 길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지만 낮이나 밤이나 그분과 함께 걸어가게 하십니다. 그분과 함께 있는 것, 그분을 사랑하는 것, 그분이 나를 사랑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목표에 도달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세서약은 사람들 앞에서 무한한 하느님 사랑을 비춰주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이와 관련해 교황님께서는 올해의 사순절 담화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세는 과거의 예식이 아니라 영세자의 온 존재를 변화시키는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영세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넣어주고, 은총으로 시작되어 은총으로 지속되는 진정한 회개에로 우리를 부르며, 어른이된 그리스도의 모습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키워줍니다. >> 우리는 은총의 충실한 도구가 되기위해 회개하려 하며 다른이들을 예수님께 데려가 그분과 만나도록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응답입니다.

3. 함께하기

우리가 묵상해본 복음장면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는 계획을 변경하여 생각보다 이틀을 더 그 고을에 머무르십니다 (요한 4,40). 틀림없이 그 여인과 고을 사람들의 영혼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보통 한 순간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사랑은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고 함께 해주도록 우리를 움직입니다. 우리와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목적은 그들이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예수님]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요한 4,42). 예수님은 우리 자신이 상처 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굽혀 이웃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을, 서로가 서로를 거들어주고,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이는 이웃의 짐을 덜어주고 함께 하고자 자신의 피곤함과 어려움을 잊어버린 진정한 자비입니다.

렉늄 크리스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 회개와 성화의 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면,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사도활동은 늘 그들과 함께하고, 이끌고, 형제자매 개개인 안에 하느님과 만나려는 열망을 불어넣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영성가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느님안에서 자신의 시초와 결말을 찾는 여행자에 비교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그분과의 만남, 예수님안에서 자신을 열어보이시는 그분과의 만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자유의지로 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안에서부터 우리를 움직이고 교회의 활동은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통해 우리를 도와줍니다. 형제자매들은 우리를 밀어주고 함께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각자가 가야하는 길입니다. 누구도 자신이 해야할 노력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이 세가지 자세는 –깨우기, 응답하기, 함께하기– 시간이 가며 순서대로 나오거나, 따로 떨어진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명에 따르는 세가지 단면이고, 유일한 사랑의 세가지 표현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마음과 의지로 하느님의 사랑을 인식하고, 깊은 내적 일치안에서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고자 합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갚습니다.

우리 자신도 기도와 성체안에 계시는 그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물을 매일 마시기를 게을리하지 맙시다. 우리의 형제자매와 함께 해주면서, 우리도 하느님의 은총과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하며 길을 가고있음을 잊지맙시다. 그리고 우리의 교황 대리자이신 벨라시오 데 파올리스 추기경님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이 갱신과 정화의 길을 가족처럼 함께 걸어가고있는 우리를 이끄시는 추기경님을 성령님께서 계속 밝혀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성모님께서 여러분께 축복을 내리고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들을 위한 봉사자
알바로 코르쿠에라 총장 신부, LC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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