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저는 일주일에 3~4번은 운동 삼아 한강에서 조깅을 합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생각이 필요할 때에 특히 도움이 됩니다. 반포 한강공원을 중심으로 서쪽으론 김포가, 동쪽으론 하남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구조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한 길이라도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길을 갑니다. 어떤 사람은 걸어서, 어떤 사람은 뛰어서, 또 어떤 사람은 자전거나 전동 스쿠터를 타고 갑니다. 혼자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룹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둘이 오붓하게 가기도 합니다. 즉, 앞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방식은 정해져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엊그제 시작된 것 같은 2021년이 어느새 하반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여름의 무더위를 몰아낼 즈음 저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신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출국까지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고 문득 한국에서 보낸 지난 3년을 뒤돌아봅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 3년은 제게 있어 정해져 있는 부분들이 많았었다고 느껴집니다. 명령에 복종하고, 여러모로 제한이 많았던 20개월의 군 복무 기간, 전역 후 레늄 청년들을 위한 수업과 여러가지 사목으로 신부님들을 보좌한 1년의 실습 기간, 주어진 일과 정해진 목표가 있었기에 더 다양한 것들을 추구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잠시. 한강에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뛰다가 지칠 때면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하듯이, 저도 잠시 멈춰 서서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비록 한정된 길이였다 한들, 바쁘게 앞만 보고 뛰어온 길이였다 한들, 그 안에 깃들여진 수많은 경험과 새로운 인연들. 더불어 쌓인 좋은 추억들과 아팠던 기억들. 결국, “내가 앞만 보느라 내 주위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에서 뛰면 당연히 지치는 것처럼, 저희 모두에게는 지치고 공허한 시기가 찾아옵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현실과 걸어가야 하는 길에 만족하지 못해 다른 샛길로 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찾아올 때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한강에서 무심코 지나쳐온 멋진 풍경들, 아름다운 구름과 노을, 하늘을 밝게 비춰주는 달과 별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 안에도 무심코 지나쳐온 감사한 인연들, 작고 소박하지만, 힘이 되었던 좋은 추억들, 어려운 시기에 밝은 빛이 되어 준 가족과 친구들, 내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이 되어 준 수많은 별들과 멋진 풍경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만나 뵐 수 있을 때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혼자인 것 같고, 무엇 하나 힘이 되어 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그저 부르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지친 나에게 구름이 되어 주시고 노을이 되어 주실 것이며, 어두운 밤에는 달과 별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우리의 모든 앞길은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분 안에서 자유롭게 한강을 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4개월 남짓 남은 2021년.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 열심히 달려 가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