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저희 수도회 수사 신학생들은 여름마다 신학교를 떠나 다양한 사목 활동을 합니다. 어떤 수사들은 이탈리아의 본당에서 봉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수사들은 가정 방문하는 사목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수사들은 대학에서 청년들과 함께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사목 실습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 여름동안, 독일에 있는 저희 수도회 후원자분들을 방문하는 것과 오스트리아에서 남학생 여름캠프 사목 활동을 하였습니다.
독일로 간 것은 이번이 다섯번째여서 그런지 그동안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독일어도 조금씩 이해가 되고 사람들과도 소통을 할 수 있게되어 나름 뿌듯하고 좋았습니다. 독일에서 가정 방문 사목을 하면 운전도 많이해야 하고, 많은 시간을 신자분들과 보냅니다. 한 달 반 동안 거의 1만 킬로미터를 운전하고, 가끔은 하루에 10시간도 넘게 대화를 하며 지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 방문했던 대다수의 분들이 연세가 80이 넘는 어르신들이어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정신없이 운전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쁜 여름을 보냈습니다.
오스트리아로 갈 때쯤 저는 생기 넘치는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상상과는 다르게 남학생들의 캠프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머물던 집에서 70명 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집은 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잘 공간이 없다 보니, 저는 성당에서 자야만 했습니다. 제가 자던 곳은 감실 바로 뒷 공간으로, 감실과의 거리가 1미터도 채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첫날밤 사무엘을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저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모기 소리에 계속 잠을 깼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모기들은 추운 날씨에도 왜 그렇게 극성인지.....매일 늦게 자고, 또 일찍 일어나고, 더욱이 잘 자지도 못하다보니 왠지 다시 군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불편한 상황을 불평하는 지경에 이르러 찌뿌둥 한 상태로 성당에 앉아 있던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갑자기 캠프를 지도하시던 담당 신부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수사, 아이들 아침 기도 좀 지도해 주면 좋겠어~” 저는 아직 준비도 덜되고, 더구나 제 서툰 독일어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성당에 아이들이 들어왔는데, 전혀 말이 나오지 나왔습니다. 이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저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제 자신에 저도 당황이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예전 제 소신학교 시절, 미국 수사님이 어떻게 지도하셨었는지를 떠올리며 이 시간을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올해 있었던 8일간의 침묵시간 동안 이 당황스러었던 경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수도 생활을 한지도 벌써 12년이 지났고, 나름 수사라고 하는데, 왜 나는 그때 기도를 하지 못했을까? 왜 기도하는 것이 아직도 이렇게 어색할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영혼의 성”이라는 책에서 기도하는 것을 우리 내면에 있는 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우리 영혼은 성과 같아서 아주 아름다운 건물인데, 그 안에 여러 방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깊고, 아름다운 방에는 우리의 왕이신 하느님이 계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성녀는 이 책에서 첫 번째 방, 즉, 기도의 시작은 침묵과 겸손이라고 합니다. 침묵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또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지하고, 창조자 앞에 있는 피조물다운 진실된 태도, 즉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느님을 쉽게 잊어버리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반면, 세상의 것들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성녀의 말대로 우리 내면에 현존하고 계신 하느님과 만나려면 내적 침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침묵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쁜 일상을 핑계로 내적 침묵을 실천하지 않을 때 외향적인 것에만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정신 또한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하는 것,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점점 어색해지곤 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불행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방에서 혼자 침묵 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내적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들었지만, 제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만남을 가지려면 내적 침묵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저의 부족함을 통해 깊이 깨달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한 내적 침묵은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