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식
십자가의 사칙연산
얼마 전 EC(Encounter with Christ 레늄 공동체 고유의 복음과 생활 나눔 시간)에서 있던 일입니다.
복음 묵상 시간에 한 자매님이 루카 복음 9,2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구절에 대한 묵상을 나누셨습니다. 자신의 삶의 십자가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며, 십자가를 주님의 뜻으로 기꺼이 끌어안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계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후에 자연스럽게 다른 분들의 십자가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지고 있는 무거운 십자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는 이 이야기 앞에, 순간적으로 저의 십자가가 가볍고 작게 느껴지며 힘든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음을 뒤 이어 묵상을 나눈 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나눔이, 듣는 사람의 십자가에는 나눗셈으로, 말하는 사람의 십자가에는 뺄셈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십자가를 나누면 항상 이런 셈법이 작용될까요?
어떤 때에는 듣는 사람의 어깨가 몇 배로 무거워지기도 하고, 말한 사람도 공감받지 못한 서운함까지 더해져 십자가가 더 무거워질 때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곱하기와 더하기가 작용할 때도 있다는 거지요.
과연 어떤 차이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차이는, 십자가를 나누는 사람의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라 주님의 뜻 안에서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신세한탄이나 원망에만 기울거나 절망감에 잠식당하는 태도와 달리, 듣는 사람의 어깨를 무겁게 하지 않고 오히려 듣는 사람 자신의 십자가를 가볍게 느끼게 하는 나눗셈의 신비를 발휘했습니다.
두 번째 차이는 듣는 사람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섣부른 판단을 하거나 성급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원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로써 경청과 공감의 자세를 가질 때, 십자가는 뺄셈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덜어낸 만큼은 곧잘 주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과 부활의 희망 안에서 중보기도로 올려지곤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십자가 나눔이 나눗셈과 뺄셈이 되는 이 공동체가 참 아름답고 고맙다는 생각이 새삼 듭었습니다. 나의 무거운 십자가를 나누고 짐을 덜었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을 더 가까이 만나고 따르려는 공통의 바람으로 모여든 우리들. 함께하는 시간 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가 쌓인 우리들. 예수님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끌어안으려 애쓰며, 타인의 십자가를 공감과 기도로 나누어 지는 우리들.
삶의 십자가는 끝이 없겠지만, 서로의 십자가를 나누고 덜어주는 사랑의 셈법 안에서, 믿음과 희망으로 십자가 너머의 부활을 함께 꿈꾸는 우리들이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 안인숙 로사, 레늄 평신도 회원
